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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spend your life collecting things how can you enjoy them or your life ?

Have you ever just stood & looked around your house & thought what is all this stuff ? We all do it. Spend stupid amounts of money on things, clothes, cosmetics, food, anything on a bargain. 471 more words

Inspiration

Bosnian Component of Anti-Gender Based Violence Program Launched

The European Union and UN Women in BiH organized a high-level workshop in Sarajevo to launch the country-level component of “Ending Violence against Women in the Western Balkan countries and Turkey: Implementing Norms, Changing Minds”. 239 more words

Society

Political Ideologies Series; Communism

This week, instead of our usual #Todays3, we will look at political ideologies. The reason for this is there has been much confusion about these ideologies as of late. 195 more words

Politics

Red story.

With his tired body and acheing head he bumped on his bed and got drown into deep sleep, suddenly air around him became suffocating, his head started sweating. 364 more words

Society

집단 허리디스크에 걸린 한국사회

서울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95% 신뢰구간에서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허리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있다는 확신을 어렵지 않게 갖게 될 것이다. 혹은, 이들이 옆으로 걷는 행위를 전혀 하지 못하는 특수한 유전적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구글 스콜라를 검색한 결과 이에 대한 의학계열의 논문이 전무한 상태인데, 이 흥미로운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의학계의 관심이 지나치게 낮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영국의 엑스터 대학교 정도의 연구기관에서 이에 대한 연구를 이미 진행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더 놀라운 사실은, 통근자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출퇴근 시간 지하철, 혹은 버스의 복도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주변인과의 신체적 접촉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정말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 중 대부분이 백팩이나 핸드백을 몸에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백팩이나 핸드백을 어깨에서 내려서 손으로 들고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종합해보면 이러하다. 한국인은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찬 대중교통수단의 한가운데를 통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타인과의 접촉을 기꺼이 감수하는 가운데 자신의 접촉면을 줄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찰결과를 바탕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리자면, 한국인은 백팩과 핸드백을 몸에 장착하는 순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특수한 상태로 진화할 뿐 아니라 허리를 돌려 옆으로 걷는 방법을 망각하게 되는 특이한 퇴행현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이 사회 전체적으로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한국사회는 만성적인 허리디스크에 집단적으로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보건복지부 장관이 성명을 발표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급한 상황이다.

백팩과 허리디스크, 또는 무통증과의 상관관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에 앞서, 혼잡스러운 대중교통수단 안에서 한국인은 왜 백팩을 벗어서 들고 타지 않는가, 혹은 그 혼잡스러운 곳을 굳이 걸어서 통과하려고 할 때 타인에 대한 비정상적 신체적 접촉행위에 대해 미안함을 대체 왜 표시하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을 진지하게 탐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가정의 출발점은 정보의 미획득이다. 한국인은 혼잡한 공간에서 백팩을 벗었을 때 얼마나 추가적인 공간이 확보될 수 있는지, 몸을 옆으로 돌려 걸었을 때 타인과의 신체적 접촉을 얼마나 회피할 수 있는지, 혹은 미리 “실례합니다”와 같은 말을 상대방에게 했을 때 서로의 공간을 얼마나 더 양보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학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 버스와 지하철이 공급되기 시작한지 이미 몇십년이 지났고,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타인에 의한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이 야기하는 불쾌함의 정도에 대한 학습은 이미 완료되었을 확률이 높으며, 비록 정장에 백팩을 메고 타는 ‘패션'(이걸 ‘패션’이라고 기꺼이 불러주는 나도 참 많이 약해지고 부드러워졌다)이 유행한지 몇년 되지 않았다 해도 그 패션을 고집하는 남자들의 대다수는 대학교때 마자 플라바나 루카스, 혹은 최소한 이스트팩 등 다른 종류의 백팩을 메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본 경험이 최소한 한번 이상은 있었을 것이 분명한 바, 더 나아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부터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습관처럼 말하라는 가르침을 담임선생님께 습관처럼 두들겨 맞으며 배웠던 경험이 한번씩은 있었을 것이므로, ‘학습의 부재’ 가정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판정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들은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샘솟는다. 한국인이 얼마나 못되고 싸가지 없으면 그러한 행동이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접촉을 불사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내가 저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면 분명히 몸이 닿겠구나, 그러면 저 사람도 싫어하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하고 말겠어!’

위와 같은 생각이 출퇴근길 한국사회를 허리디스크의 개미지옥 속으로 빠트리는 주된 명제란 말인가. 개인적으로는 이 생각도 근거가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내가 관찰한 바 출퇴근길 한국인들은 대부분 생각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저렇게 몇 문장으로 이어진 생각을 할 여유가 있다면 주변을 차분하게 돌아볼 여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 집 밖으로 나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까지의 과정도 이미 너무 벅찬데, 사람으로 꽉 찬 그곳 안에서 타인을 무시하는 이기심을 마음속 깊숙한 곳부터 끄집어내는 마인드컨트롤을 할만큼 사고의 끈이 긴 한국인은 사실 몇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그나마 영혼의 불씨가 어떻게 하다보니 남아 있다고 해도 그 영혼의 나머지 부분은 휴대폰의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이내 소멸해버린다. 이들은 이미 이마 위에 제 3의 눈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시야를 휴대폰에 빼앗겨도 상대방과 부딪히지 않을 정도의 민첩함은 이미 확보해놓았다. 애초에 타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다. 즉,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도 여유가 있어야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아무 생각없어보이는 이들이 모두 동일한 행동패턴을 일정하게 나타낸다면, 즉 이들의 행동에 일정한 규칙성이 있다면, 그 원인 역시 사회적인 차원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결론은 이러하다. 이들은 사회에 의해 등떠밀리는 삶을 살고 있다. 대도시라는 익명성 속에 숨어 불편함을 ‘모르는 타인’에게 전가한 채 찰나의 승리를 위해 질주하는 삶을 살고 있다. 타인을 조금만 더 불편하게 만들면 내가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있을 수 있다. 불편함을 전가하는 타인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죄책감은 덜어지고, 당장의 이익은 가시적이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조금 더 나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을 밀치고 지나가는 것이고, 굳이 백팩을 벗거나 몸을 옆으로 돌려 걸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딱히 남을 해하려는 나쁜 마음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 뿐이다. 지금 당장 저 눈앞의 자리가 탐나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하차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옆의 칸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기 때문에, 옆 사람의 불편함을 인위적으로 망각하는 것 뿐이다. 만약 어깨를 치고 지나가야 하는 사람이 회사 부장님이라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은 관계에 약하다. 한국사회에서의 관계는 대부분 계급이다. 계급이 없다고 여겨지는 친구 간 관계 역시 책임과 의무가 존재한다. 한국사회에서 관계는 연속적이다. 계급의 상층부에 있는 이의 영향력이 가장 말단의 사람에까지 미친다. 청와대에서 기침하면 동네 노점상이 타격을 받는 사회다. 그만큼 타인과 자신 사이에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면 익명성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폭력을 정당화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다. 억눌려 잇었기 때문에 풀 곳이 필요하다. 노인들은 심지어 공짜로 탈 수 있는 지하철은 그러한 억눌린 관계에서의 해방을 위한 열린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책임도 없고 의무도 없다. 회사 복도에서는 임원이 지나갈때 마치 임금님이 지나가는 것처럼 옆으로 몸을 돌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연출하지만 지하철에서는 내가 왕이므로 모두의 어깨를 치면서 지나갈 수 있다. 관계와 계급에 많이 억눌릴수록 공공장소에서의 행동은 거칠게 발현될 확률이 높다.

무척 슬픈 사실은, 위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타고 빨리 내리면 대체 삶의 어떤 부분이 나아지는가? 거의 없다. 정말 거의 없다. 그저 땀이 조금 더 많이 날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사회가 등을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쳐져버릴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딱 한번이라도 미끄러지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공포심에 질려 남들보다 빨리 걸으려 하고 남들보다 오래 일하려 하며 남들보다 앞에 줄서기를 원한다. 그렇게 하다보니 반칙은 정당화되고 거짓말은 별 것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남들보다 조금만 더 빠르게, 조금만 더 많이, 조금만 더 잘 하면 다 좋아질 것이라고 ‘다들’ 믿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인이 걸린 병은 허리디스크가 아닌 정신병이다. 이들은 집단적인 히스테리 증세를 경험하고 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모두가 더 나쁜 선택을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는 조금씩 더 나빠지고, 지하철과 버스는 조금씩 더 혼잡해진다. 최근 새로 만들어진 2호선과 9호선 열차에는 선반이 없다고 한다. 백팩이나 다른 짐을 사람들이 올리지 않으니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이것은 사회가 나빠지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이제 사람들은 백팩을 벗어 올리고 싶어도 올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회가 개인을 더 등떠밀게 된다. 못되지라고, 나빠지라고 등떠밀게 된다.

Daily

I'm Adulting?

Oh adulting, isn’t it just the most amazing thing ever? I remember when I was in high school, so excited to get the fuck out of there, never see half of that cohort again, and then truly experience the real world and all the amazing thing it has to offer. 523 more words

Personal

Beating yourself up

This odd behavior mostly shows up when others are criticizing us, disappointed or angry about something we did. Odd because it’s so useless.

In those moments, there are already plenty of other people beating you up. 53 more words

Self-Realis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