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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Wittgenstein and the Performance of Disability

In the article, “Paul Wittgenstein and the Performance of Disability” in The Journal of Musicology, author Blake Howe discussed the story of Paul Wittgenstein (1887-1961), a pianist that had only a left hand for most of his career after losing his other arm to amputation during WWI, and how it epitomizes the idea that the world of Western Art Music has certain standards that create a stigma that a performer who is outside the norm – or disabled – must spend their lives striving to achieve what a normal musician can achieve. 504 more words

Wittgenstein v. Thomism: Causal Principles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5.12  In particular, the truth of a proposition ‘p’ follows from the truth of another proposition ‘q’ is all the truth-grounds of the latter are truth-grounds of the former. 323 more words

Catholic

On 'Being Anxious' and 'Anxiety'

“Anxiety (Angst) is ubiquitous, but seems capable of a lower and a higher form.” I. Murdoch in her “Sein Und Zeit: Pursuit of Being”.

My question is: can being anxious be a good thing? 1,003 more words

Davidson

CareTake 2

Emery Ward couldn’t believe his luck. When his academic advisor mentioned a possible part-time job that included living accommodations, that was lucky strike number one.  That the accommodations were in the home of his intellectual hero, Dr. 680 more words

레이 몽크, 「비트겐슈타인 평전」


레이 몽크, 「비트겐슈타인 평전-천재의 의무」, 남기창 역 (필로소픽: 서울, 2012)

Ray Monk, Ludwig Wittgenstein: The Duty of Genius (Penguin: 1991)

저자 레이 몽크는 비트겐슈타인의 복잡한 사유체계를 설명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지면을 할애했다. 대신 저자는, 자서전 작가로서는 당연하게도, 그의 삶을 조명하는데 집중했으며, 많은 양의 편지 내용을 인용했다. 사실상 그의 삶은 그의 사유와 매우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유만큼이나 흥미로운 그의 삶과 삶에 대한 그의 태도를 통해, 독자는 그의 사유를 더욱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은 무리 없이 잘 되었고, 문장은 가독성이 좋다. 그러나 이것이 원문으로 인한 것인지 번역으로 인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물론 저자가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를 최대한 분명하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고, 삶에 대한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태도에서도 그의 사유가 잔뜩 묻어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그의 사유세계에 대해 더욱 깊이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은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읽어왔던 다른 철학자들의 평전(헤겔, 하이데거 등)과 비교했을 때, 이 자서전에서는 철학적 사유 자체에 대한 논의가 상대저으로 뜸했다고 느껴진다. 어쩌면 이러한 결과는 그 철학자들의 사유체계 자체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헤겔과 하이데거는 복잡하고 웅대한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상했기 때문에, 그들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말들이 필요했을법하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거대한 철학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시도들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단도와 같다

헤겔을 예로 들어보자. 헤겔은 일생 동안 방대한 양의 저술을 해왔다. 반면에 비트겐슈타인은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탓에 한권도 제대로 출판할 수 없었다. 또한 헤겔은 그의 사유체계에 기반해서 중요한 모든 영역들에 대한 조직적인 저술들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형이상학을 정신, 역사, 정치, 종교 등등 굵직굴직한 이슈들에 대해서도 적용했던 것이다. 반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거대한 철학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시도들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단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저 단도가 필요했기 때문에 원대한 철학적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며, 대신 사유의 근거가 되는 언어, 즉 사유의 문법을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간단히 격파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는 철학이 체계가 아닌 시적인 글로서 쓰여져야 한다고 말했으며, 이것이 철학에 대한 그의 태도를 요약한 것이라고 말했다(417).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철학함을 “특별한 종류의 수수께끼, 즉 언어의 수수께끼를 제거하려는 시도(418)”라는 말로 요약했다.

“철학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상을 파괴하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의 형이상학체계를 부숴뜨리기 위해 또 다른 하나의 형이상학체계를 세우는대신, 비트겐슈타인은 형이상학적 철학함의 근본적 운영방식, 즉 언어와 논리를 간단하게 격파하려 시도한다. 그는 철학함을 위한 “최초의 필요조건(141)”은 “문법에 대한 불신(141)”이라고 믿었으며, 그가 만약 그의 철학적 사명선언문을 작성했다면 “철학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상을 파괴하는 것(464)”이라고 첫문장에 적었을것이다. 그리고 이 우상이란 다름아닌 세계를 해석하려는 거대한 교조적 체계일 것이다–그것이 종교든, 철학이든, 정치적 이즘이든, 과학적 자연주의이든. 따라서 그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그리 긴말이 필요치 않을 수도 있겠다. 비트겐슈타인 자신도 하나의 완성된 거대한 철학체계를 남기지도 않았고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논리학적 개념이나 그 토론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어쩌면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를 그저 매우 난해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해독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어쩌면 그의 사유가 일종의 말장난 혹은 궤변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이라면 쉬운 입문서적이나 블로거들의 설명을 뒤적거리며 선행학습을 한 후에 평전독서를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점을 또한 명심해야 한다: 엉뚱하게 들리는 그의 비유들은 모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유의 문법을 그 근본에서부터 무너뜨려 우리의 익숙한 세계를흔들어놓으려는 그의 전략의 일부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제 문제들을 다루지 않고 철학함 자체에 대해 사유했다. 그의 사유는 상징적 언어로 이루어진 문화세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사유의 한계를 드러내려는 시도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우리가 사유할 때 반드시 매개로 삼아야하는 우리의 언어는 어느 특정 문화권의 산물이며, 따라서 그 언어는 그 근저에 해당 문화의 가정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그 언어들이 간직하고 있는 가정들을 건드리지 않은채 추구하는 철학적 사유는 모두 의미 없는 언어게임일 뿐이다. 그러한 사유를 하는 철학자들을 그는 강단철학자라고 명명(그리고 동시에 멸시)한다. 강단철학자들이 쏘는 화살은 진리라는 과녁은 전혀 건드리지도 못한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며, 사람들을 그 화살자체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진리로부터 멀어지게만 할 뿐이다. 우리의 언어에 내재된 바로 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전제들을 거부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은 이 언어게임에 균열을 내려한다. 아마도 이것이 천재 비트겐슈타인의 의무일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의도와 사유는 매우 귀한 것이다. 우리는 상징적 기호로 이루어진 언어 없이는 사유할 수 없고, 우리가 태어난 그 문화로부터 부여받은 언어를 가지고 사유하는 동안 우리는 그 언어 속에 깊이 내재된 가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이제는 별로 새롭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정확한 지적이며 자명한 이치다. 우리가 언어안에 내재된 전제들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상, 우리는 결코 우리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철학할수 없다. 우리가 현재 우리의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은 그 세계관이 정확해서가 아니라 그 세계관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것이 옳다고 나 자신을 납득시킴으로써 얻은 게 아니다. 또한 그것이 옳다고 납득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그림을 얻는 것도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배경이며 이 배경에 의거해서 나는 참과 거짓을 구분한다(815).”

“우리의 언어의 한계가 우리의 세계의 한계다”

비트겐슈타인이“우리의 언어의 한계가 우리의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할 때, 그는 바로 이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의 철학으로 언어게임의 “카드로 만든 집(523),” 즉 우리의 세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그 세계를 떠받쳐주고 있는 “언어의 토대를 청소(523)”한다.

해석학적 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비록 같은 언어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각 사람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해당 단어의 의미가 한 개인에게서 특정한 의미를 가진 상징적 언어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들 뿐만 아니라, 같은 민족 안에서도 개인들은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설정해주는 한계만큼의 세계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해석학적으로 아주 엄밀하게 보자면,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를 그 매개로 삼은 철학은 아무 것도 말해 줄수 없다. 철학은 이제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는 무언가를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는 철학보다 예술이 우월하다. 왜냐하면 철학은 ‘설명’하고, 즉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 예술은 ‘보여주기’때문이다. 반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무언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 ‘말해질 수 없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서문에서 자신의 저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철학은 이제 침묵해야 한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분명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233).”

어떤 단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말할 수 없다. 그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오직 그 단어가 인생에서 만들어내는 효과, 즉 차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평전의 저자 몽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단어들이나 그것들을 말할 때 하는 생각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것들이 인생의 여러 시기에서 만드는 차이가 중요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이 각각 신을 믿는다고 말할 때 그들이 같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아는가? 똑같은 질문이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에도 던져질 수 있다. 어떤 특정한 단어들과 구절들을 사용할 것을 고집하고 다른 것들을 추방하는 신학은 아무것도 명료하게 만들지 못한다(카를 바르트). 그것은 말하자면 단어들을 갖고 몸짓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실행이 단어들에 그 의미를 준다(816).

사람들에게는 어쨌거나 토대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의 기존 전제 위에 세워진 모든 것들이 해체의 대상일수는 없다. 문화의 산물인 특정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완전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음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문화 내에서 우리 만의 진리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영위한다. 나는 그러한 우리의 모든 시도들이 결코 비천하다거나 혹은 ‘비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철학자들은 아무 것도 말해 줄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철학도 그저 철학의 무력함을 폭로할뿐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람들에게는 어쨌거나 토대가 필요하다. 비트겐슈타인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토대로서 종교가 갖는 유익함을 인정한 듯 보인다. 몽크의 글을 보자.

“나는 세계에 대한 나의 그림을 갖고 있다. 그것은 참인가 거짓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나의 모든 탐구와 주장의 기반이다.” 종교적 신앙이 이 기반을 제공하지 못할 이유는 없으며, 종교적 믿음이 “우리가 물려받은 배경, 즉 그에 의거해서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그런 배경”의 일부가 되면 안 될 이유는 없다(815).

물론 이때 말하는 종교적 신앙은 기독교의 건실한 원리들, 즉 교리를 받아들인다는 좁은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기독교가 말하는 것들 중의 하나는, 건실한 원리들은 모두 쓸모없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삶(또는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지혜란 모두 차가운 것이며, 사람들은 차가운 쇠를 단련할 수 없듯이 삶을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 지혜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요점은 건실한 원리가 사람들을 지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 의사의 처방을 따르듯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들은 자신들을 움직이게 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무엇을 필요로 한다. … 지혜에는 열정이 없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신앙은 키르케고르가 일종의 열정이라고 부른 것이다(698).

그 역시도 그러한 신앙을 갈망했다.

요약하자면, 철학계의 도장깨기 천재인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철학적 우상들을 격파해야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도장을 깨버린 그는 인자하게도 종교적 신앙을 위한 여지만큼은 우리들에게 남겨주었다. 인생은 엄밀한 철학이 아니라 열정으로 살아내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역시도 그러한 신앙을 갈망했다.

“신앙은 나의 사변적인 지성이 아니라, 나의 마음, 나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신앙이다. 왜냐하면 구원받아야 하는 것은 열정, 말하자면 살과 피를 가진 나의 영혼이지 나의 추상적인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554).”

물론 이 경우에 신앙이 취하는 형태는 특정 교리를 수용하거나 심지어 지성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816). 그는 지혜(철학과 엄밀함)와 열정(신앙과 실행)을 구분하며 “지혜는 잿빛”이고, “인생과 종교는 색으로 차 있다(698)”고 말했다. 즉, 열정적인 종교적 신앙이 실존을 구제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의 부제, “천재의 의무”는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든다.

다만 이 책의 부제, “천재의 의무”는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부제는 엘리트의식으로 무장한 내 친구를 상기시킨다. 그 친구는 이 책을 내게 추천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은 나와 절연한 그 친구가 많이 생각났다. 그 친구가 이 책을 추천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 친구가 비트겐슈타인과 어느 면에서 무척 닮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 친구가 이 책을 자신의 소개장처럼 나에게 주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심지어 그가 비트겐슈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모방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트겐슈타인의 표현과 취향과 태도마저 그 친구는 수입해서 자기것인것 마냥 행동했다. 그 둘의 어떤 면모들은 나를 상당히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이토록 불편하게 만드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들의 바로 그 면모를 나와 내 어머니에게서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모들은 거의 그대로 그 친구에게서 구현되며, 나와 어머니에게서는 복잡하고 미묘하게 변형된 다른 형태로, 그리고 한층 더 완화된 형태로 (이것은 참 다행이다) 나타난다. 완화된 형태라고 말했지만, 그 친구는 아마 이것을 아마추어적인 형태라고 불렀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는 매우 생산적이고 흥미진진하며, 그것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귀한 것이겠지만, 기존의 학술행위와 모든 삶의 형태들을 경멸하고 깔보는 듯한 그의 언행은 거의 참아주기 힘들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취향을 거의 무시했으며 그러한 취향을 가진 인물들에 대해 느끼는 못마땅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솔직한’ 태도에 스스로 만족해했다. 그의 인생의 최대의 윤리적 숙제가 온전한 진실함이었기 때문일까. 저자가 마지막에 평가한 것처럼,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아마도 이러한 윤리적 진지함과 자신의 양심에 대한 스스로의 성실함일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감추는 것은 이런 그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관습과 관계를 위한 에티켓 따위는 도로위의 ‘서행’ 표지판을 보듯 간단히 무시한채, 그의 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물론 그렇게 표현된 감정의 대부분은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것이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생체기를 만들고 그 자신을 고립시키는데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주변 인물 중 ‘교양이 부족한’ 사람들을 향해 그의 국대급 인간개조 본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면이 나에게 이 책을 권해주었던 그 친구에게서 거의 똑같이 재현된다. 물론, 그들이 그들의 엘리트의식을 숨기고 짐짓 관대한척 점잔빼지 않은 것은 그나마 칭찬할 만한 부분이라고 볼수도 있겠다. 또한 나에게도 조금은 있는 불편한 면모들(엘리트의식, 인간개조본능, 세계개조본능, 그리고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못했을 때 표현되는 찌질함과 옹졸함)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둘은 타산지석의 유용함도 지녔다. 말년에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신은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나는 너를 네 자신의 입으로 심판하노라. 너는 네가 한 행동들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았을 때 혐오감으로 몸을 떨었도다(827).

그리고 나의 그 친구도 그렇게 나에 대한 혐오감으로 몸을 떨었던적이 있었다. 그의 면모들을 내게서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지독할 정도로 치밀한 사유와 그보다 더 지독한 세계개조의 교만함 때문에 인간 비트겐슈타인은 누구보다 고독하고 외로워했고, 때때로 동성의 연인에게서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면도 보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인간에게 의지하는 본인의 모습을 철저히 증오함으로써 스스로를 더욱 괴롭혔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어떤 특정 관계 혹은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 즉 그의 ‘항상적 이방인스러움’이 그를 철학자로 만든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359). 그러므로 그의 고독은 그가 자초한 면이 크다 하겠으며, 그 고독의 무게는 독자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는 “나의 하루는 논리학, 휘파람, 산책, 그리고 우울해지는 것으로 지나갑니다(146)“라고 적었다. 하기야, 우리가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친절한 목격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관찰한다면, 어떤 인간이라도 우리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천재는 교만해야할 의무마저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확실히 천재였으며, 그 자신의 천재적 의무에 성실했다. 그는 이렇게 기원했다. “내가 더 지적이 되고 모든 것이 끝내 나에게 분명해지도록, 그렇지 않다면 더 오래 살 필요가 없도록 신에게 기원합니다(146).” 하지만, 천재의 의무는 우리 세계의 전제들을 검토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치면 이상적일 것이다. 천재가 되는 것은 매우 임의적인 운명의 선택인지라 천재인 그 특정 개인의 공로가 아닐테니까. 그래서 그 천재는 교만해야할 의무마저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 판단하기에 완벽한 관점을 전파하기 위해 거의 선교사와 같은 사명감으로 세계를 개조하려는 천재에게서 나는 자주 독재자의 향취를 맡는다. 푸코가 「안티 오이디푸스」의 서문에 적었듯이, “누군가가 자신을 혁명적 투사라고 믿는 바로 그때(특히 그때), 어떻게 해야 파시스트가 아닐 수 있을까?” 아, 잠깐! 독재자스러운 교만함 조차도 어쩌면 범인들을 개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도 천재의 신성한 의무목록에 넣어도 좋겠다.

(2018. 02. 12)

Book

Gathering the info...

I’ve just ‘opened’ my FIFTH lever-arch file of copies of original material relating to Henry Coombe-Tennant of Cadoxton, Neath.

There are still a lot more documents to examine and – once that is complete – I need to work through the (probably) 2,000+ pages and index them into themes so that I can bring related info into the correct place in my writing of Henry’s biography (publisher to be sought further down the path…) 31 more words

Henry Coombe-Tennant

CareTake 1

After her retirement as professor of post-modern philosophy at the university, Clarice Tempest promised herself that when the tasks of daily maintenance caused too much physical pain to her arthritic hands and limbs, she’d seek a caretaker. 800 more words

Bonus Sh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