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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inental Philosophy vs. Analytic Philosophy: What is the Nature of the Distinction?

Nowadays, it is common to speak of western philosophy as if it can be neatly divided into two sections: continental and analytic.  It is a fairly recent distinction, with the school of analytic philosophy generally thought to have begun in the late 19th century with Gottleb Frege and later Bertrand Russell.   788 more words

Philosophy

비트겐슈타인 평전 (Ludwig Wittgenstein: The Duty of Genius)

레이 몽크, 「비트겐슈타인 평전-천재의 의무」, 남기창 역 (필로소픽: 서울, 2012)Ray Monk, Ludwig Wittgenstein: The Duty of Genius (Penguin: 1991)

저자 레이 몽크는 비트겐슈타인의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사유체계를 설명하는 데에는 아주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이 자서전은 철학입문서적으로 둔갑했을 것이다. 대신 저자는 (자서전 작가로서는 당연하게도)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만큼이나 흥미로운 그의 삶을 조명하는데 집중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삶 자체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거대한 철학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시도들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단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자가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를 최대한 분명하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고, 삶에 대한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태도에서도 그의 사유가 잔뜩 묻어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그의 사유세계에 대해 더욱 깊이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은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읽어왔던 다른 철학자들의 평전(헤겔, 하이데거 등)과 비교했을 때, 이 자서전에서는 철학적 사유 자체에 대한 논의가 상대저으로 뜸했다고 느껴진다. 어쩌면 이러한 결과는 그 철학자들의 사유체계 자체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헤겔과 하이데거는 복잡하고 웅대한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상했기 때문에, 그들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말들이 필요했을법하다. 반면에,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거대한 철학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시도들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단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형이상학체계를 부숴뜨리기 위해 또 다른 하나의 형이상학체계를 세우는대신, 비트겐슈타인은 형이상학적 철학함의 근본적 운영방식, 즉 언어와 논리를 간단하게 격파하려 시도한다. 따라서 그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그리 긴말이 필요치 않을 수도 있겠다. 비트겐슈타인 자신도 하나의 완성된 거대한 철학체계를 남기지도 않았고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논리학적 개념이나 그 토론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어쩌면 비트겐슈타인의 사유가 매우 난해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또 어쩌면 그의 사유가 일종의 말장난 혹은 괘변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이라면 쉬운 입문서적이나 블로거들의 설명을 뒤적거리며 선행학습을 한 후에 독서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번역은 무리 없이 잘 되었고, 문장은 가독성이 좋다. 그러나 이것이 원문으로 인한 것인지 번역으로 인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이 책의 부제, “천재의 의무”는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든다.

다만 이 책의 부제, “천재의 의무”는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부제는 엘리트의식으로 무장한 내 친구를 상기시킨다. 그 친구는 이 책을 내게 추천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은 나와 절연한 그 친구가 많이 생각났다. 그 친구가 이 책을 추천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 친구가 비트겐슈타인과 어느 면에서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니, 그 친구는 이 책을 자신의 소개장처럼 나에게 주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심지어 그가 비트겐슈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모방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심지어 비트겐슈타인의 표현과 취향과 태도마저 그 친구는 수입해서 자기것인마냥 행동했다. 물론 그러한 면들이 그 친구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들이어서 그가 비트겐슈타인에게 끌린 것인지, 아니면 비트겐슈타인의 이러저러한 면들이 마음에 들어서 그 친구가 그 후에 비트겐슈타인을 모방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모두 나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이토록 불편하게 만드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들의 바로 그와 면모를 나와 내 어머니에게서 발견한다. 그러한 면모들은 거의 그대로 그 친구에게서 구현되며, 나와 어머니에게서는 복잡하고 미묘하게 변형된 다른 혀태로, 그리고 한층 더 완화된 형태로 (이것은 참 다행이다) 나타난다. 완화된 형태라고 말했지만, 그 친구는 아마 이것을 아마추어적인 형태라고 불렀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제 문제들을 다루지 않고 철학함 자체에 대해 사유했다. 그의 사유는 상징적 언어로 이루어진 문화세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사유의 한계를 드러내려는 시도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우리가 사유할 때 반드시 매개로 삼아야하는 우리의 언어는 어느 특정 문화권의 산물이며, 따라서 그 언어는 그 근저에 해당 문화의 가정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그 언어들이 간직하고 있는 가정들을 건드리지 않은채 추구하는 철학적 사유는 모두 의미 없는 언어게임일 뿐이다. 그러한 사유를 하는 철학자들을 그는 강단철학자라고 명명하며 멸시한다. 강단철학자들이 쏘는 화살은 진리라는 과녁은 전혀 건드리지도 못한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며, 사람들을 그 화살자체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진리로부터 멀어지게만 할 뿐이다. 우리의 언어에 내재된 바로 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전제들을 거부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몽매한 세인들과 교만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강단철학자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천재 비트겐슈타인은 이 언어게임에 균열을 내려한다. 아마도 이것이 천재 비트겐슈타인의 의무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의무를 위해 그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저 쓸데 없는 말장난 같은 괘변과 비유들을 활용한다.

“우리의 언어의 한계가 우리의 세계의 한계다”

이러한 그의 의도와 사유는 매우 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상징적 기호로 이루어진 언어 없이는 사유할 수 없고, 우리가 태어난 그 문화로부터 부여받은 언어를 가지고 사유하는 동안 우리는 그 언어 속에 깊이 내제된 가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이제는 별로 새롭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정확한 지적이며 자명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구조주의나 라캉과 같은 후기 구조주의와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도 생각된다. 우리는 언어안에 내제된 전제들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상, 아무리 고급의 철학적 사유를 한다해도, 그것은 그저 의미없는 말장난, 즉 언어게임일 뿐이며, 우리는 결코 우리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철학할 수 없다. “우리의 언어의 한계가 우리의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할 때, 비트겐슈타인 바로 이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의 기존 전제 위에 세워진 각종 문화의 행태들이 모두 해체의 대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문화의 산물인 특정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완전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화 내에서 우리 만의 진리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이 결코 비천하다거나 혹인 ‘비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시각에서는 당시의 유럽은 완전히 퇴폐적이었고 찬란했던 예술과 교양이 무너지고 있었다. 문화적으로 가장 고상했던 빈의 부유한 가정에서 돈과 예술적 재능을 넘치도록 부여받은 형제들과 함께 자라난 비트겐슈타인은 그 자신도 상당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당시의 그러한 ‘퇴폐적’ 유럽문화를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그가 보기에 그것들은 모두(철학이건 예술이건 정치이건) ‘비진리’이고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 문화를 폐기처분하자는 비트겐슈타인의 저항마저도 크게 보아 기존의 문화에 이미 있는 속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그의 철학적 사유 역시 그 문화의 산물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그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그 언어로 이루어진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 있다고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렇게 나는 조심스레 의심해본다.

위와 같은 아주 생산적이고 흥미진진한 철학적 논의들의 가치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귀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기존의 학술행위와 모든 삶의 형태들을 경멸하고 깔보는 듯한 그의 언행은 거의 참아주기 힘들다. 그와 같은 천재는 천상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지상의 오물같은 문화를 도저히 눈뜨고는 못봐주겠는 모양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취향을 거의 무시했으며 그러한 취향을 가진 인물들에 대해 느끼는 못마땅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솔직한’ 태도에 스스로 만족해했다. 그의 인생의 최대의 윤리적 숙제가 온전한 진실함이었기 때문일까. 저자가 마지막에 평가한 것처럼,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화두는 아마도 이러한 윤리적 진지함과 자신의 양심에 대한 스스로의 성실함일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감추는 것은 이런 그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관습과 관계를 위한 에티켓같은 것은 도로위의 ‘서행’ 표지만을 보는 것처럼 간단히 무시한채, 그의 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물론 그렇게 표현된 감정의 대부분은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것이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생체기를 만들고 그 자신을 고립시키는데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주변 인물 중 ‘교양이 부족한’ 사람들을 향해 그의 인간개조 본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면이 나에게 이 책을 권해주었던 그 친구에게서 거의 똑같이 재현된다. 물론, 그 둘모두 그들의 엘리트의식을 숨기고 짐짓 관대한척 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칭찬할 만한 부분이라고 볼수도 있겠다. 또한 나에게도 조금은 있는 불편한 면모들(엘리트의식, 인간개조본능, 세계개조본능, 그리고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못했을 때 표현되는 찌질함과 옹졸함) 더욱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둘은 타산지석의 유용함도 지녔다.

그렇게 지독할 정도로 치밀한 사유와 그보다 더 지독한 세계개조의 교만함 때문에 인간 비트겐슈타인은 누구보다 고독하고 외로워했고, 때때로 동성의 연인에게서 위안을 받고 싶어한는 인간적인 면도 보였다. 그러나 결코 교만함보다 그 지독함에서 뒤지지 않는 그의 윤리적 고결함에 대한 추구로 인해 그는 다른 인간에게 의지하는 본인의 모습을 철저히 증오함으로써 스스로를 더욱 괴롭혔다. 그러므로 그의 고독은 그가 자초한 면이 크다 하겠으며, 독자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만하다. 하기야, 우리가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친절한 목격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관찰한다면, 어떤 인간이라도 우리는 동정심을 느낄 것이다.

천재는 교만해야할 의무마저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천재의 의무는 우리 세계의 전제들을 검토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치면 이상적일 것이다. 천재가 되는 것은 매우 임의적인 운명의 선택인지라 천재인 그 특정 개인의 공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천재는 교만해야할 의무마저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어쩌면 스스로는 완벽하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관점을 전파하기 위해 거의 선교사와 같은 사명감으로 세계를 개조하려는 천재에게서 나는 이따금 독재자의 향취를 맡는다. 아, 잠깐! 독재자스러운 교만함 조차도 어쩌면 범인들을 개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도 천재의 신성한 의무목록에 넣어도 좋겠다.

(2018. 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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